의료칼럼

인체 경보계 이상 경고 ‘공황장애’

작성일 : 2022-09-28 조회 : 1,652

동일한 단어가 쓰이는 분야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공황(恐慌)이 정신의학에서는 ‘예기치 않게 갑작스럽게 생기는 극심한 두려움이나 공포를 나타내는 심리적 불안 상태(panic)’를 의미하지만, 경제학에서는 ‘경기의 순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극도의 경기 침체(depression)’를 뜻한다. 그래서인지 일반인이나 심지어 의사들조차도 정신의학에서 사용하는 공황장애란 개념을 잘 모르고 혼동하는 경우가 흔하다. 언론에서는 공황장애를 연예인병이라 부르기도 한다. 일부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커밍아웃한 결과다.


인류의 역사 이래로 공황(panic)이라는 정신병리 현상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갑작스럽게 발생한 불안의 극심한 형태의 정신병리 현상이 아니라 독립된 질병 단위(disease entity)라는 사실이 알려진 건 최근의 일이다. 1980년도에 이르러 비로소 공황장애(panic disorder)라는 진단명이 처음으로 소개됐다. 공황장애의 개념이 정립되면서 정신의학에서 신경증(노이로제)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됐다. 그 때문에 공황장애의 개념이 정립되는 과정을 되돌아보는 것은 이 질환의 진단과 치료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예기치 않게 극심한 불안이나 두려움이 갑작스럽게 엄습할 때(공황발작, panic attack) 대부분 사람은 특징적인 행태를 보인다. 갑자기 숨이 막히는 듯한 호흡곤란과 심계항진 및 이로 인한 과호흡, 심한 어지럼증, 사지의 감각 이상, 전신의 전율감 등과 함께 죽거나 미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존재의 소멸에 대한 공포가 나타난다. 긴급히 응급실을 찾거나 119구급대의 도움을 요청하는데 이런 현상은 길어도 20~30분 이상 지속되지는 않고 정상으로 돌아온다.


공황발작은 의존관계가 위협을 받을 때 나타나는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과 관련 있다는 정신분석학적 견해가 우세했다. 그러나 1950년대 개발된 최초의 항우울제인 이미프라민(imipramine)이 공황발작을 차단한다는 사실이 우연히 발견되면서 정신분석학적 견해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속해서 축적되는 의학적 증거를 통해 공황발작은 기존의 불안 개념과는 다르다는 견해가 힘을 받게 됐다. 20여 년에 걸친 의학적 논란 끝에 1980년에 이르러 마침내 공황발작과 관련된 현상들은 증상적인 차원에서 공황장애라는 새로운 진단적 실체로 확립됐다.


유기체는 생존의 위협이 되는 상황이 예견되거나 상황에 접했을 때 신체에 경고신호를 보내 생존에 필요한 심리적, 생리적 반응을 나타나게 한다.


오늘날 공황장애는 약물치료와 함께 인지행동치료로 완치가 가능한 정신질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황장애의 개념이 비교적 최근에 확립되어 이해가 부족해서 적절한 진단과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장기간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해결되지 않으면 공황장애의 진단이 틀렸거나 치료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영인 (창원한마음병원 심리수면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