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방사선 색전술의 암 치료 효과

작성일 : 2023-12-12 조회 : 2,817
간암으로 수술적 절제 가능한 환자 10~20% 불과
최근 간문맥 통해 혈류 공급받는 간 특성 이용
경동맥 방사선 색전술로 크기가 큰 암도 치료
사전 검사 통해 시술 가능 여부·치료 범위 결정
항암제 아닌 방사선 동위원소 담긴 작은 미세구
간동맥으로 주입해 방사선으로 종양 파괴
기존 색전술로 인한 복통 등 전신 부작용 적고
입원기간 짧아 고령환자도 안전하게 치료 가능

우리나라는 만성 B형 간염 환자가 많기 때문에 간암 환자가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간암은 위암, 대장암에 비해 5년 생존율이 떨어진다. 간암의 수술 치료도 쉽지 않지만 간 기능이 저하돼 병행해야 할 약물 치료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이미 수술적 절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수술적 절제가 가능한 환자는 10~20%밖에 되지 않아 대부분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한다. 그러나 최근 간의 독특한 혈류 공급 구조인 ‘간문맥’ 덕분에 새로운 치료법이 생겨났다. 바로 ‘방사선 색전술’이다.


최근 창원한마음병원이 경남에서 처음으로 방사선 색전술을 도입함에 따라 간암에서의 새로운 희망이 될 치료법을 함께 알아보고자 한다.

(사례1) 얼마 전 갑작스럽게 배가 불러온 73세 어르신이 진료실에 찾아왔다. 타 병원에서 검사했더니 10㎝ 크기의 커다란 암 덩어리가 간에서 발견됐고, 간경변증 또한 있어서 치료가 쉽지 않은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암 판정에 놀라시는 눈치였지만, 이내 마음을 먹고 치료를 잘해달라고 요청하셨다. 다만, 수술하기에는 고령에다 종양의 크기가 매우 커서 위험하다고 판단되어 ‘경동맥 방사선 색전술’을 시행하기로 하였다.


(사례2) 1년 전 대장암으로 수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받던 56세 남성이 1년 만에 전이성 간암이 발견됐는데,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치료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했다. 다학제 진료팀을 열어 여러 의사가 고민한 결과 ‘경동맥 방사선 색전술’을 시행하기로 했다.

경동맥 방사선 색전술- 카테터를 이용하여 작은 유리구슬 형태의 치료제를 간동맥으로 주입한다.

◇간의 특성을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방사선 색전술

우리 인체의 장기는 ‘동맥(심장에서 몸의 각 기관이나 조직으로 혈액을 운반하는 혈관)’으로부터 영양 공급을 받지만, 특이하게도 간은 ‘간문맥’을 통해서 75%의 혈류를 공급받는다. 간문맥은 소장과 간을 연결하는 정맥 혈관으로, 소장에서 흡수한 영양분을 간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간문맥이 주요한 역할을 하다 보니 간동맥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다. 단, 암세포는 다르다. 암세포는 간동맥으로 영양분을 공급 받는다. 즉 간동맥을 차단하면, 간문맥으로부터 영양 공급을 받는 정상 간세포는 살아갈 수 있지만, 암세포는 굶어 죽는다. 이러한 원리로 ‘색전술’이라는 치료법을 탄생해 지금까지도 많은 간암 환자들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경동맥 화학 색전술 vs 경동맥 방사선 색전술

색전술에도 종류가 있는데, 현재 간 종양의 치료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술은 ‘경동맥 화학 색전술’이다. 간동맥을 찾아 항암제를 투여하고 혈관을 막는 치료법이다. 구체적으로는 리피오돌이라는 기름으로 만들어진 조영제에 독소루비신 같은 항암제를 섞어서 에멀전(유화) 형태를 만들어 암 종양에 연결된 ‘간동맥’에만 집중적으로 주입한 후, 영양동맥 자체를 혈관을 막는 색전(塞栓·혈관 내 덩어리) 물질을 이용해 완전히 혈류를 차단함으로써 종양을 괴사시키는 방법이다. 다만, 경동맥 화학 색전술 치료를 한 환자는 혈관의 색전, 종양 괴사로 인한 복통, 메스꺼움, 구토, 발열, 식욕부진 등의 증상을 보이는 색전후증후군을 경험하기도 한다. 다른 합병증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보통 대증 치료를 통해 수일 내에 좋아지지만 여러 차례 경동맥 화학 색전술을 해야 하는 환자라면 이러한 합병증이 굉장히 곤혹스러운 일이다.


이와 달리,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새로운 치료법인 ‘경동맥 방사선 색전술’은 항암제가 아닌 방사성 동위원소(이트륨-90)가 들어있는 작은 유리구슬 형태의 치료제를 간동맥으로 주입해 방사선으로 종양을 치료하는 방식인데, 종양의 크기가 큰 경우에도 시행할 수 있고, 색전술로 인한 전신부작용이 적어 고령이나 신체활동이 감소한 환자에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해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다. 물론 작은 유리구슬 형태인 미세구의 가격이 매우 비싸다는 점에서 단점이지만, 지난 2020년 12월부터는 간세포암과 전이성 간암 환자에서 선별급여가 적용돼 치료의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

 

◇경동맥 방사선 색전술 치료 과정

경동맥 방사선 색전술의 과정은 ‘사전 검사를 위한 시술’과 ‘본시술’로 이뤄진다. 사전 검사를 하는 이유는 간동맥에서 주입한 미세구가 간암을 지나 폐로 빠져나갈 수 있고 그 양이 많으면 방사선 폐렴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간동맥 혈관조영술과 폐 혈류량 스캔 검사를 한다. 인터벤션실에서 피부의 국소 마취 후 서혜부의 대퇴동맥을 통해 카테터라는 관을 삽입한 후 촬영하면서 간과 그 주변 장기의 혈관 상태 및 치료 범위를 미리 확인한다. 그리고 시술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있는 혈관의 혈류를 차단하는 색전술을 시행한 뒤, 핵의학검사를 위한 방사성 동위원소를 주입하고 시술을 위해 삽입했던 카테터를 제거하면 시술이 종료된다. 대략 1~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이후 핵의학검사실로 이동하여 폐 혈류량 스캔 검사를 시행하면 모든 사전 검사시술이 끝난다.

사전 검사를 통해 시술 가능 여부 및 치료 범위를 결정하면, 치료 목적에 맞는 용량으로 외국에 있는 제작사에 미세구를 주문한다. 그 후 약 10일 후 미세구가 국내에 반입되어 병원으로 배송되면 사전에 약속한 날짜(대략 2주 후)에 환자가 재입원해 본시술을 받게 된다. 본시술 역시 인터벤션실에서 이루어지며, 마찬가지로 피부 마취를 하고 서혜부의 대퇴동맥을 통해 카테터를 간동맥에 위치하게 한 뒤 준비한 미세구를 주입하는데, 약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간단한 시술이다. 이후 미세구가 계획한 대로 종양에 잘 주입됐는지 확인하는 핵의학과 검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본 시술은 종료되며, 대개는 그 다음 날에 환자가 퇴원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치료를 포기할 수 없는 환자에게는 희망을 주고, 고통을 받으며 치료했던 환자에게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의료인이 가져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 간암에서의 경동맥 방사선 색전술은 새로운 희망일 수 있다. 예기치 못한 상황 때문에 치료가 어려웠던 환자들이 이러한 새로운 치료법을 통해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을 연장하고, 여생을 잘 마무리할 기회로 삼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