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한마음

[인터뷰] 한국 현대의학 100년사에 개인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사람

작성일 : 2021-04-16 조회 : 3,248

■ 하충식 한양대학교 창원한마음병원 이사장


한강 이남에서는 단일규모로 가장 큰 병원

8천 평 부지에 연건평 4만여 평의 초대형 병원

24개 진료센터, 30개 진료과 3만종 최신식 장비


28년 전 창원서 산부인과로 시작해 지금에 이르러

“지방대 출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성공의 큰 요인은 “고비마다 운이 좋았다”

열심히 했지만 운이 없었으면 못했을 것

지금까지 130억 원 이상 기부한 기부 왕

기부하면 반드시 대가가 돌아온다 믿음

골프치지 않고 차는 10년 넘은 아반떼 타



 


“한양대학교 창원한마음 병원이 단일규모로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병원입니다.”


창원한마음 병원의 하충식 이사장은 자신의 병원을 이렇게 표현했다. 비록 창원에 있지만 대학병원보다도 규모나 시설 면에서는 더 우수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3월 개원한 창원한마음 병원은 8천여 평의 부지에 연건축면적 4만평의 대규모이다. 가용병상 1008병상에 24개 진료센터 30개의 진료과가 있다. 3만종에 달하는 최신식 의료장비와 100여명의 우수한 의사, 1400명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대기업이다. 28년 전 창원에서 조그만 산부인과의원을 열었던 지방대 출신 무명의 의사가 이룩한 성과이다.


“한국 현대의학에서 한 개인이 당대에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이룩한 가장 큰 병원입니다.” 하충식 이사장은 창원한마음병원이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들어온 이후 가장 큰 성공의 역사라고 자부했다. 재벌그룹들이 세운 병원이나 2대, 3대에 걸쳐 큰 병원을 이룩한 사례는 많다. 그런데 당대에 이만한 규모의 병원을 만든 것은 드물다는 것


하 이사장은 자신의 성공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단정적으로 표현했다. 그건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 너무 억울한 말 아니냐는 질문에 “정말 운이 좋아서 지금의 병원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물론 30년간 지독하게 열심히 일했지만 열심히 했다고 이런 성공을 할 수는 없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운에 대해 첫째 아내를 잘 만난 것을 들었다. “아내가 소아과 의사로 열심히 진료하는 사람이었기에 함께 한 병원이 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것이 지금 성공의 기반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어려울 때마다 희한하게 일이 잘 풀려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고 회고했다. 특히 마지막으로 지금의 창원한마음병원 부지를 확보한 것도 운이었다고 밝혔다.


“지금의 부지가 원래는 백화점 부지였습니다. 그런데 할 사람이 없어서 병원부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지금 부지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거대한 꿈을 꿀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의 병원을 짓게 된 것도 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 그래서 하 이사장은 일은 사람이 꾸미지만 이루는 것은 하늘이라는 옛말이 틀린 게 아니라고 믿는다.


운이 좋았지만 하 이사장이 이렇게 성공을 위해 달린 것은 지방대 출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고 고백했다. “우리 사회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성적이 주홍글씨처럼 평생을 따라다닙니다.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하 이사장은 조선대 의대를 나왔다. 의대를 졸업하고 보니 서울대, 연대 출신들이 그들만의 상위리그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 이사장은 이것을 깨고 싶었다. “조선대 출신, 지방대 출신들에게 의학계에서 졸업은 또 다른 시작이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는 30년이 지난 지금 하 이사장은 한국사회에서 모두가 승복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증명했다.


하 이사장의 또 다른 면은 기부 왕이다. 지금까지 약 130억 원 정도의 기부를 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매년 12~20억 원에 해당하는 기부를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기부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기부를 하고 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니 기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 이사장의 기부지론이다.


이렇게 기부도 많이 하고 성공도 했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별로 하는 게 없다. 평생 골프를 치지 않고 고급차도 타지 않는다. 지금 운전하고 있는 차는 10년이 더 지난 현대 준 준형 아반떼이다. 옷도 아내가 인터넷쇼핑몰에서 내려주는 것을 입고 다니며 운동이래야 등산이 전부이다. 그것도 전국의 명산을 다니는 게 아니라 28년째 똑같은 산을 오르고 있다.



 


다음은 하충식 이사장과의 대담 내용이다.


▲직함이 원장이 아니라 이사장이다.


-창원한마음 병원은 한마음국제의료재단 소속이다. 저는 의료재단의 이사장이다.


▲한마음국제의료재단에는 어떤 기관들이 있나.


-한양대학교 창원한마음병원과 그랜드머큐어 호텔, 그리고 창원시에서 위탁받아 경영하고 있는 마산시립요양병원이 있다.


▲한양대학교 창원한마음병원에 대해 얘기해 달라.


-건물규모가 약 4만평으로 한강 이남에서는 단일 병원건물로서는 가장 크다. 대학병원보다도 더 크다. 또 병상도 가용병상 1008병상으로 창원에서는 가장 크다. 직원 수는 1400명이다. 병원이지만 거대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병원의 위치가 어떤가.


-여기가 창원의 중앙역이다. 또 도청과 시청이 인근에 있다. 교통이 4통8달이다. 그리고 풍수적으로 이 부지가 천혜의 명당이라고 들었다. 큰 행운을 가져다주는 자리라고 한다. 앞으로 병원경영이 잘 될 거라는 느낌이 든다. 비록 풍수관점이 아니더라도 주변이 산으로 둘러 쌓여 경치가 좋고 아늑하다. 건물을 짓다가 땅속에서 16톤이나 되는 큰 돌이 나왔다. 그 돌로 두꺼비를 조각해 현관에 앉혀 놓았다. 두꺼비가 복을 상징하니까 아마 큰 복이 들어올거라고 믿고 있다.


▲의료진은 어떤가.

-최고의 의료진을 초빙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나라 로봇수술의 대부라고 칭해지는 산부인과 이윤순 교수, 뇌혈관 수술의 전문가 박인성 병원장 등 100여명의 의료진이 최고의 기술로 환자를 대하고 있다.


▲진료 분야는 얼마나 되나.


-24개 질환별 진료센터에 30개 진료과가 있다. 중증질환에서부터 만성질환까지 원스톱 진료시스템을 구축했다.


▲병원 앞에 한양대학교가 붙는다. 어떤 의미인가.


-한양대학교 교육병원이다. 한양대 교육병원은 창원한마음병원과 일산에 있는 명지병원 등 2곳이다.


▲대학의 교육병원은 어떤 의미가 있나.


-의료진이 모두 전임교수와 임상교수로 발령이 난다. 사립학교의 교원이기 때문에 사학연금에 가입이 된다.


▲이런 것들이 의료진을 초빙하는데 도움이 되나.


-아무래도 그렇다. 의료진도 한양대학교와 교류가 되기 때문에 의사 입장에서는 실력향상을 위한 좋은 여건이 된다.


▲이사장이 역점을 두는 분야는 어디인가.


-모든 분야에 역점을 두지만 특히, 뇌 심장 암 중증외상 등의 분야에 신경을 많이 쓴다.


▲이유가 있나.


-경남도민들이 병원에 가장 바라는 분야이다. 또 365일 24시간 열린 병원을 지향하고 있다. 언제든지 병원에 오면 진료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큰 병원을 만든 이유가 있나.


-제가 고향이 경남이다. 그런데 아플 때 부산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진료 받으러 서울 가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경남사람들이 아파서 부산 병원 가는 것은 막아주고 싶었다. 최소 부산에 있는 병원보다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었다.


▲다른 병원에 없는 자랑할 시설이 있나.


-고압산소 치료기가 있다.


▲이게 중요한 시설인가.


-그렇다. 가스중독이나 잠수병 등 집단으로 중독현상이 발생했을 때 꼭 필요한 시설이다. 이게 없어서 중부 경남 사람들이 상당히 불편했다. 그런데 이 시설은 병원을 신축할 때 설치가 가능하다. 규모가 대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신축하면서 큰맘 먹고 고압산소 치료기를 설치했다. 대규모 중독사고가 발생해도 우리 지역 사람들이 원정 진료를 가지 않고 우리병원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병원 장비들은 어떤가.


-이번에 신축하면서 대부분의 장비를 새로 도입했다. 약 3만종 될 거다. 현대의학은 장비가 승부라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장비에 의해 치료의 수준이 많이 결정된다. 최신, 최고의 장비를 구비했기 때문에 진료의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고 자신한다.


▲창원에 온 것은 언제인가.


-1994년 3월에 왔다.


▲창원에는 왜 왔나.


-제가 함양출신으로 고향이 경남이다. 그렇다 보니 고향의 수도인 창원에서 병원을 하고 싶었다.


▲그전에는 어디에 있었나.


-부산의 수련병원에서 봉직하고 있었다.


▲그럼, 창원에 와서도 산부인과를 했나.


-그렇다. 1년간은 개인산부인과를 했다. 그리고 95년 1월에 100병상 되는 제법 규모가 있는 병원을 개설했다. 월세로 건물을 임대해 병원을 오픈했다.


▲그 병원을 언제까지 운영했나.


-7년간 운영했다. 그 건물주인의 덕을 많이 봤다. 월세로 임대를 줬기 때문에 초기에 병원을 오픈하기 위한 큰 자본 없이 병원을 할 수 있었다. 그게 지금의 기반이 됐다.


▲창원에 올 때 이렇게 큰 병원을 열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나.


-예상하지 못했다. 창원에 오니 정말 경쟁이 심했다. 처음 창원에 왔을 때 우리보다 큰 병원이 00병원이었다. 그래서 00병원을 이기자. 그 생각만 했다.


▲그래서 이겼나.


-그랬다. 00병원을 이기고 나니 00병원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래서 또 00병원만 이기자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00병원을 제치고 나니 00대학병원이 창원에 오픈했다. 00대학병원을 이기고 나서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지금의 위치, 10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이라는 게 의료계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나.


-한국에 현대의학이 들어온 지가 약100년 된다. 그 100년사에 드문 사례일 정도로 의미가 있다.


▲더 큰 병원들이 많지 않나.


-창원한마음병원 보다 큰 병원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병원들은 재벌기업들이 세운 것이거나 아니면 2대, 3대에 걸쳐 세운 것들이다. 당대에 개인병원으로 시작해서 1000병상 이상의 대형병원을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세운 것은 제가 유일하다. 그 정도로 현대의학에서 나름 의미가 있다.


▲개인병원에서 시작해서 큰 병원이 된 사례가 없나.


-아니 많다. 예를 들면 차병원, 길병원, 백병원, 을지병원, 한강성심병원, 건양대병원, 순천향병원 등 많다. 그런데 이런 병원들은 이미 30년 전에 기틀이 잡힌 병원들이다. 그 시절은 의료보험도 적용되지 않았고 세무행정도 투명하지 않았다. 또 제약회사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런데 제가 시작한 시기는 병원들이 유리알처럼 투명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앞에서 예를 든 이런 병원들이 기틀을 잡은 후 30년 동안 창원한마음병원 같은 대형병원이 생기지 못했다. 제가 그 천장을 뚫은 것이다.


▲하 이사장이 가능했던 이유가 뭔가.


-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나. 운은 자신이 컨트롤하지 못하는 건데.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저는 진심으로 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통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을 많이 하고 사는 데 저는 이 말이 인생을 잘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열심히 하지 않았나.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열심히 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성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살아보고 성공해 보니 알게 되더라.


▲운 중에서도 어떤 것들이 지금이 있기까지 중요했나.


-저는 오늘의 저를 만든데 네 가지 운이 있었다.


▲어떤 것들인가.


-첫째 아내이다. 아내가 소아과 의사이다. 아내가 진료를 많이 봤다. 그래서 병원 살림이 좋아지는데 큰 기여를 했다. 혼자서 했더라면 못했을 거다.


▲두 번째는 뭔가.


-창원에 왔을 때 사글세로 병원을 얻을 수 있었던 거다. 월세로 임대를 했기 때문에 초기 큰 자본이 없이 병원을 차릴 수 있었다. 만약 사글세 임대인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오늘날 제가 있기가 어려웠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뭔가.


-IMF덕분이다.


▲IMF가 왜 운인가.


-IMF가 와서 창원의 파티마 병원을 짓던 건설회사가 부도가 났다. 이 건설회사의 부도로 파티마 병원의 개원이 3년이나 연기됐다. 파티마 병원이 제날짜에 오픈했다면 오히려 제가 경쟁에서 도태되어 작은 병원에 머물고 있었을 거다.


▲네 번째는 뭔가.


-네 번째는 지금의 부지를 구한 거다. 이 부지가 원래는 백화점 부지였다. 그런데 백화점 하려는 곳이 없다보니 우리한테 기회가 온 거다. 만약 이 부지를 구하지 못했더라면 저도 이런 일을 도모하지 못했을 거 아닌가.


▲창원에는 이렇게 큰 부지가 없나.


-8천 평 이상 되는 단일부지도 없다. 또 이렇게 접근성이나 풍수가 좋은 곳은 더더욱 없다. 그래서 모든 게 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이 일을 꾸며도 성사시키는 것은 하늘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운이 좋은 것은 좋은 의료진과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같이 함께했기 때문에 오늘이 있다고 생각한다. 직원들 대부분이 28년 전 창업멤버들이다. 그리고 20년 이상 거래하는 업체가 30군데가 넘는다.


모든 분 들의 도움이 제일 컸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운이 좋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첫째는 부모님의 기도덕분이고 두 번째는 제가 기부를 많이 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기도는 이해를 하겠다. 그런데 기부도 하면 운이 생기나.


-저는 확신한다. 기부를 하면 반드시 대가가 돌아온다고 믿는다. 제가 해보니 그렇더라. 그래서 직원들이나 주변에 늘 얘기한다. 남을 위해서 기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기부하라고.


▲지금까지 지부를 얼마나 했나.


-어떤 언론에서 130억 원 정도 기부한 것으로 보도한 기사도 있었다. 매년 12~20억 원 정도 기부하고 있다.


▲언제부터 기부를 시작했나.


-저는 인턴, 레지던트 시절부터 시작했다. 그때 작은 월급으로 미화원 여사님들의 양말, 비누를 사주고 그랬다.


▲이렇게 한 이유가 있었나.


-어머님의 가르침 때문이다. 어머님이 늘 밥 얻으러 오면 빈 그릇으로 보내지 않았다며 사람 괄시하지 말라, 고 가르치셨다. 지금도 어머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어려웠던 적이 있을거 아닌가.


-사실 작년이 가장 힘들었다.


▲왜 그런가.


-코로나로 코호트 격리가 되었다. 병원 신축이 완성돼 가는데 코호트 격리에다가 의사들은 초빙이 잘 안됐다. 그때는 정말 앞이 캄캄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성공할거라고 생각했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의대 졸업하고 막 개업했을 때 운을 보러 갔다. 그때 만석꾼은 되겠네, 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동네 조그만 산부인과 하고 있는데 만석꾼이 무슨 소린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 만석꾼이라는 게 한 고을의 부자를 의미하는 말 같다. 지금의 제가 한 고을의 부자 정도는 된 거 같다.


▲구체적으로 재산이 얼마나 되나.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재산이 거의 없다. 병원은 의료재단이어서 제 개인소유가 아니다. 또 소비성향이 낮아서 별로 돈 쓸데도 없다.


▲취미가 없나.


-평생 골프를 치지 않는다. 또 차도 고급차를 사 본적이 없다. 지금 타고 다니는 차가 10년도 더 된 현대 아반떼다. 옷도 고급 옷을 입어본 적이 없다. 아내가 인터넷에서 사서 준다. 취미라면 등산이다. 주말에는 꼭 등산을 한다. 그것도 전국의 명산을 다니는 게 아니라 창원에 있는 산을 28년째 오른다. 동행자 없이 혼자서 5시간 정도 걷는다. 혼자서 걸으면 생각이 정리돼 좋다.


▲돈도 쓸 줄 모르고 취미도 없으면서 뭣 때문에 그리 열심히 살았나.


-지방대 출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리 사회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성적이 평생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서울대 안 나와도 꿈을 이룰 수 있다. 지방대 나와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의대는 그래도 낫지 않나.


-의대도 마찬가지이다. 서울대, 연대라는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고 싶었다.


▲이제는 극복이 됐나.


-우리나라에서는 공인받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전체 의대 졸업생 중에서 병원 경영으로는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는 무엇을 할 건가.


-병원이 진료를 잘하는 것은 기본이다. 모든 진료부문에서 창원한마음 병원이 한강 이남에서는 최고 간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거기에다가 더해서 창원한마음 병원이 있는 이곳을 메디컬클러스터로 만들고 싶다.


▲메디컬클러스터라는 게 뭔가.


-먹자골목처럼 여기에 많은 병원들이 들어와서 병원단지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될 경우 병원들 간에 경쟁도 되지만 협력도 할 수 있어서 의료수준이 한 단계 높아질 수 있다. 그런 다음에 의료관광단지를 만들 생각이다.


▲의료관광은 현실성이 있나.


-우리나라의 의료수준은 세계최고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능가한다. 전 세계에 내놔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특히 코로나19를 계기로 한국의 의료수준이 전 세계에 홍보된 점이 많다. 그래서 충분히 인프라는 갖췄다고 생각한다. 또 김해공항에서 5시간 이내에 18억의 인구가 살고 있다. 시장도 충분하고 인프라도 갖췄기 때문에 이제는 노력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그 노력을 할 생각이다.


황인태 대기자 dndry42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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