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한마음

병원서 ‘직업 음악인’ 꿈 이룬 발달장애인들

작성일 : 2021-06-24 조회 : 2,346

창원한마음병원, 국내 첫 직고용

‘발달장애 오케스트라’ 창단·운영

단원 20명 정직원 채용 ‘행복 동행’



 

단원의 95%가 지적·자폐성 등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창원한마음병원 오케스트라가 23일 오후 병원 로비에서 환자와 내원객들을 위한 ‘행복한 콘서트’를 열고 있다./김승권 기자/


자폐성 장애를 가진 박종호(23)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플루트를 배우면서부터 간직해온 ‘직업 음악인’의 꿈을 이뤘다. 한양대학교 창원한마음병원이 운영하는 ‘오케스트라’ 정식 단원이 되면서다.


창원한마음병원은 최근 기존의 진료직·간호직·원무직 직무에 ‘장애 예술인’ 직무를 추가했다. 장애인을 직고용한 오케스트라 창단을 위해서다. 이 오케스트라는 지난 4월 장애인들의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사)‘희망이룸’ 정지선 대표가 하충식 창원한마음병원 이사장을 찾아 ‘키다리 아저씨’가 돼줄 것을 청하면서 시작됐다.


정 대표는 2012년부터 음악을 통한 장애인식개선에 앞장서고자 경남 유일 장애인 오케스트라를 운영해왔다. 청소년이던 단원들이 성인이 되면서 취업을 도와야 하는데, 꾸준한 일자리 찾기가 녹록치 않았다. 창원시의 지원을 받은 공공일자리 역시 2년이 지나면서 그만둬야 했다.


정 대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무작정 한마음병원의 문을 두드렸다”고 말했다. 그 결과 전체 단원 33명 가운데 20명이 정규직이 됐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장애인을 직고용해 오케스트라로 운영하는 것은 국내 최초다.


창원한마음병원 오케스트라 전체 단원의 95%가 지적·자폐성 등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 병원 정직원인 단원은 하루 4시간, 주 5일 근무하며 100만원가량의 월급을 받는다. 4대보험 등 복지 혜택 역시 기존 직원들과 동일하다.


단원들과 부모들은 한마음병원에 고마움을 전했다. 발달장애와 청각장애가 있는 김지윤(23·클라리넷)씨는 월급을 받아 적금도 넣고 아프리카 식수 지원 기부를 시작했다. 박종호(23·플루트)씨의 어머니 김희숙(50)씨는 “아이가 장애를 딛고 정직원이 돼 가슴이 뭉클하다”며 “아프신 분들에게 희망의 연주를 하는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장애인고용촉진법에 따라 50인 이상 공공기관, 민간기업은 전체 직원의 3.1% 이상 장애인을 고용해야 하지만 채용 적합 직무 발굴의 어려움 등으로 의무고용률에 미달해 부담금을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향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도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하는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예술 활동이 직업으로 인정받고 일반 민간 사업장의 일자리로 연계됨으로써 발달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 병원 로비는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50여명의 단원들이 환자와 보호자, 병원 직원들을 위한 ‘행복한 콘서트’를 연다. 6번째 공연이 열린 23일 낮 12시, 검은색 옷을 맞춰 입은 단원들이 윌리엄텔 서곡을 시작으로 ‘마이웨이’, ‘에델바이스’, ‘라데츠키 행진곡’, ‘시네마천국&넬라판타지아’, ‘아리랑&아리랑랩소디’, ‘베토벤바이러스’, ‘캐리비안의 해적’을 잇따라 들려줬다. 아름다운 선율에 오가던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면서 연주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앙코르 곡으로 트로트 ‘무조건’이 나오자 관객들은 박수를 치고 흥겹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장폐쇄증으로 입원한 박둘남(51)씨는 “오케스트라 공연 소식을 듣고 시간 맞춰 구경 왔는데 좋은 무대에 감동받아 눈물이 핑 돌았다”며 “주인공인 단원들을 위해 레드카펫을 깔아주고 싶을 만큼 규모나 실력 등 모든 면에서 놀라운 무대였다. 답답한 병원생활에 큰 활력소가 됐다”고 말했다.


하충식 이사장은 일회성 후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자립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게 됐다고 했다. 하 이사장은 “일자리는 단순히 생계유지 수단이 아니라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삶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며 “우리 병원뿐만 아니라 주변 기업들을 독려해 단원 모두 정직원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창원한마음병원 오케스트라는 오는 7월 1일 오후 2시 병원 옥상에서 창단기념 음악회를 연다. 정민주 기자